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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출신 선교사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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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난하고 희망 없는 농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부는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것이 치즈 공장 설립이었다. 산이 많고 공기가 맑은 임실 특유의 자연환경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질 좋은 치즈를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부는 우선 산양 몇 마리를 구입해 농가에 분양했다. 그런 다음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없는 것을 탓하기보다 있는 것을 활용해 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산 부자’‘시간 부자’들 아닙니까.”

그는 주민들에게 산양을 잘 키우도록 해 놓고, 치즈 기술을 익히기 위해 벨기에와 프랑스로 연수를 떠났다. 1년 후 치즈 전문가로 변신해 귀국했지만 1960년대 산골 마을에 유럽의 식생활 문화를 이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부는 치즈를 구경한 적도 없는 주민들을 “우유로 만든 두부”라는 설명으로 겨우 설득해 공장을 지었다. 한국 최초의 치즈 생산 업체 ‘임실치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1967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국 토종 브랜드로 자리 잡은 임실치즈는 2005년 12월 현재 하루 평균 5톤의 치즈를 생산, 국내 치즈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연간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이 지역의 효자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기에 임실치즈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인공이 그 외국인 신부다. 전북 지역 사람들에게 그는 ‘치즈 신부님’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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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랜만이에요. 춥지 않느냐고? 베란다 밖은 겨울이지만 우리 방은 봄이에요. 어제 담양에 다녀오느라 무리했나 봐요. 오늘은 꼼짝도 못하겠어요.”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엿들었는지라 전남 담양에는 무슨 일로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담양에 있는 한 복지기관에서 독지가들의 후원 기금 관리 프로그램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다녀왔어요. 전문 프로그래머한테 의뢰하면 돈 내야 하니까 자꾸 나한테 부탁해요.”

지 신부는 ‘무지개 가족’을 운영하던 당시 후원금 관리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혼자서 컴퓨터 서적을 보며 출납 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전라도와 충청도, 심지어 경기도 지역에 있는 복지기관에서 프로그램 설치 요청이 들어와 작업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설치해 주었는데, 공짜여서 그런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고희(古稀)를 훌쩍 뛰어넘은 노신부가 컴퓨터 운용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날도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컴퓨터 전원이 켜져 있었다.

프랑스 박물관에는 한국에도 없는 조선시대 고문서들이 많아요. 왜 그런지 알아요? 조선에 밀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의 실정을 알리기 위해 예수회에 몰래 보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이 문서들이 전쟁 중 화재로 모두 소실됐지만 프랑스는 세계 1·2차 세계대전 중에도 잘 보관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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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산양젖으로 치즈만드는 일을 시작했는데

그가 치즈제조법을 배우려고 유럽에 3개월을 다녀왔더니 12사람중 한사람빼고 모두가 그일을 그만뒀을뿐 아니라 산양도 모두 팔아치웠었다는 것이다.



요약

1. 벨기에 에서 온 신부 한국에 치즈도입

2. 말년까지 한국에서 봉사하며 출납전산 프로그램까지 만듬 ㅎㄷㄷㄷㄷ

3. 그과정에서 라도 종특 뒤통수 당하심 ㅠㅠ (어느 일게이가 글한번 썼음)

4. 좌좀새끼들 말만 우리민족끼리 하지 한국에 마이너스적인 존재 정작 다른민족선교사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