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위계승문제로
시작된 전쟁은 수십년이 지났지만
끝나지 않았어
그런 상황에 프랑스는 현명왕 샤를 5세 이후
혼란에 빠지게 되고
잉글랜드는 헨리 5세의 등장으로
내부정리를 마무리하게 되지
내부정리가 끝난 헨리 5세는 프랑스로 재차
진군하게 된다.
1. 헨리 5세의 진격과 아쟁쿠르 전투
1415년 프랑스를 재차 침공한 핸리 5세는
우선 센 강 어귀의 아르플뢰르 항구를 점령했어
공성전이 생각 보다 길어져 점령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잉글랜드군은 병력, 물자면에서 부족한 상황에 빠졌어
이에 헨리 5세는 물자 보충 겸 프랑스의 북부 거점인
칼레로 이동을 했어
<핸리 5세와 잉글랜드군의 진격>
이 당시 프랑스는 혼란으로 인해
샤를 6세는 명목상 국왕으로 전락해 있었어
이에 프랑스군은
드뢰의 백작 샤를 달브레가 프랑스군 총사령관이 되어
잉글랜드군을 막기 위해 군을 출정 시켰어
결국 두 군대는 프랑스 북부 지역인
솜강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마주쳤고 물자가 부족한 헨리 5세나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수 없던 드뢰 백작의 판단으로
두 군대는 격돌하게 되었어
이 전투가 바로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아쟁쿠르 전투야
<아쟁쿠르 전투>
이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은 6천정도이고
프랑스군이 2~3만정도로
3배정도 차이가 났어
헨리 5세는 크레시, 푸아티에 전투처럼
중앙에 기사들을 배치하고
양측에 장궁병대를 배치했어
이에 프랑스군은 여전히 중장기병대가 주력이였으며
보병과 석궁병대가 섞여있었지
크레시,푸아티에 전투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적인 측면에선 바뀐게 없었어
<영국 장궁병대와 말뚝, 그리고 전투 상황도>
아쟁쿠르는 협소한 지형이어서
대군이 이동하기 힘들었으며
중간에 진흙밭으로 변한 땅때문에
중갑기병의 기동성에도 문제가 있었어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프랑스 중장보병들은
가까스로 장궁병대 앞까지 도착하였으나
이에 잉글랜드 장궁병들은 활을 내리고 주변에 있던
도끼나 검으로 중장보병대에게 돌격을 했어
이런 상황이면 중장보병대가 우위였으야 했으나
오히려 무거운갑옷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졌고
장궁병대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중장보병대를 유린했지
헨리 5세는 철저히 진흙탕을 건너온 프랑스군만 상대했어
결국 지쳐버린 프랑스군은 무너졌고
이 전투로 드뢰 백작을 포함한 프랑스 수뇌부가
전부 몰살당하고 말았어
<아쟁크루 전투와 잉글랜드군>
아쟁크루 승전 후 헨리 5세의 입지는 탄탄해졌어
그리고 조금씩 프랑스 북부 지역을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어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 내부는 혼란의 연속이었어
결국 브르고뉴파가 헨리 5세와 평화협정을 채결했어
이 협정으로 잉글랜드는 파리를 포함한
북부 프랑스를 점령하는데 성공했어
물론 부르고뉴파에 반대하는 아르마냐크파가 계속 저항했지만
헨리 5세는 이들을 징벌하면서 영토를 더 늘려갔지
<1420년대 프랑스 영토>
- 진한 회색은 부르고뉴 지역이야-
프랑스 북부 지역과 파리를 점령한
헨리 5세의 위세는 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병이 들어 죽고 말어
그리고 얼마 후 프랑스 왕인 샤를 6세도 죽으면서
100년 전쟁은
헨리 5세의 어린 아들 헨리 6세와
샤를 6세의 아들인 도팽(왕세자) 샤를과의 대결로 바뀌게돼
그리고 이 때 프랑스에서는 기적의 소녀가 나타나
<샤를 7세>
2. 성녀 잔다르크의 등장
<성녀 잔다르크>
잔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동레미에서 태어났어
잔다르크가 13살이 되었을때 성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프랑스를 구원하라고 했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저
물론 구라겠지만
1428년 16살이 된 잔다르크는 도팽 샤를의 지지자 였던
로베르 백작에게 찾아가 계시를 받았다고
도팽 샤를을 만날 수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처음엔 로베르 백작은 웃고 넘겼지만
그녀의 진실한 태도에 결국 그녀를 데리고
도팽 샤를이 있는 시농으로 데리고가
시농에 도착해서 변장하고 있던 도팽 샤를을 찾았단 것은
많은 일게이들이 알고 있을거야
그리고 철저한 심문 끝에
알랑송 공작의 지지를 얻은 잔다르크는
잉글랜드군에게 포위된
오를레앙 해방을 위해 프랑스 군에 참가하게 돼
<심문 받는 잔다르크와 영화 잔다르크>
구원군과 보급품을 이끌고 도착한 잔다르크를
오를레앙 공작을 비롯한 수뇌부들은
작전에 참가시키지 않았어
이에 잔다르크는 마을로 내려가 직접 마을 사람들과
병사들을 설득시켜 자신의 부대를 만들었고
라우프 요새를 공격하여 100명이상 죽이고 포로를
40명이나 잡는 전과를 올렸어
이후 프랑스군에서 그녀의 인지도는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해
<선봉의 잔다르크>
그 후 잔다르크는 적극적인 공세를 주장하였고
잉글랜드군을 요새에서 몰아내기 시작해
그 후 잔다르크는 오를레앙군과 총공세를 시작했어
전투 도중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응급처치 후 다시 전투에 참여하는 투혼에
프랑스군은 사기 백배하여 승리를 거둘수있었어
그리고 이 패배 후 잉글랜드군은 오를레앙 포위를 풀고 철수하게돼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잔다르크>
오를레앙을 해방하는데 성공한 잔다르크는
도팽 샤를에게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랭스로 진격하자고 하지만
도팽 샤를은 우선 루아르 강 주변의 잉글랜드 요새 소탕을 명해
이에 잔다르크는 알랑송 공작과 함께
루아르강 일대를 평정하고
파테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크게 물리치게돼
<100년 전쟁 당시 프랑스군>
파테 전투 이후 잔다르크와 토팽 샤를은
랭스로 진격을 했고
1429 7월 17일에 무사히 랭스에서 대관식을
치룰수가 있었어
이로써 도팽 샤를은 샤를 7세로 즉위하였지
<잔다르크와 샤를의 대관식>
3. 잔다르크의 죽음과 백년전쟁의 종식
무사히 대관식을 마친 잔다르크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잔다르크의 효과를 톡톡히 본 샤를 7세와 귀족들은
다시 그녀를 전쟁터로 내몰아
그리고 파리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려
잔다르크는 처음에는 반대를 하였지만
결국 잔다르크는 알랑숑 공작과 파리 부근 생트니로
이동을 하였고
샤를 7세의 지원군이 도착하자마자
파리 수복 전투에 돌입했어
<잔다르크의 출전>
치열한 전투였어
잔다르크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을 독려하며 파리를 공격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아
잔다르크의 불패 신화가 깨지게 되는 순간이지
파리 공략 실패 후 샤를 7세는 루아르 강변으로 후퇴했고
그 후 알랑송 공작의 노르망디 공략도 기각하는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때 샤를 7세와 아르마냐크파와 적대적이었던
부르고뉴파는
눈에 가시같은 콩피에뉴 지역을 공격했고
이를 막으러 갔던 잔다르크는 포로로 잡히고 말아
부르고뉴 공작은 샤를 7세에게 그녀의 몸값을 원했지만
잔다르크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이 두려웠던 샤를 7세는 거절하지
이에 부르고뉴 공작은 그녀를 1만 프랑에
잉글랜드에 팔아넘기고
본국의 원수같았던 잉글랜드는 그녀를 종교재판에 회부하였고
마녀로 규정하여 잔다르크를 화형에 처해
<화형 당하는 잔다르크>
프랑스를 구한 구국의 소녀 잔다르크는
19살의 나이에 허망하게 세상을 뜨고 말아
그 후 다시 성녀로 추앙되며 프랑스의 영웅으로 복귀되지만
죽고나면 뭐하겠어 정말 안타까울 뿐이야
이에 관련 된 여담으로
질 드 라발이라는 잔다르크와 함께 싸운
프랑스 귀족이 있었는데
그녀의 화형식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엄청난 사이코로 돌변하고 말아
너희들이 어릴적에 보았던 푸른 수염의 모티브가
이 질드레 남작이야
< 질 드 라발과 그의 모티브인 푸른 수염>
-로린이 킬러 성애자 질 드 라발 미친놈임-
<영화와 동상 심지어 니뽕 수용소에도 나오게 되는 잔다르크>
-수용소 사진은 안 올린다 보고 싶으면 찾아봐-
잔다르크 사후 프랑스 샤를 7세는 부르고뉴 공작과
극적인 화해를 하고 내정정비에 들어갔어
이때 프랑스 국민들은 잔다르크의 죽음에
똘똘 뭉쳐진 상황이었지
잉글랜드는 이런 상황에 파리를 돌려주며 샤를 7세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시간이 필요했던 샤를 7세는 그 협정에 승인함으로써
파리를 돌려받을 수 있었어
<1450년 프랑스 영토>
휴전 기간 중 잉글랜드의 헨리 6세는 실정을 거듭했고
프랑스 정비를 마친 샤를 7세는 협정을 파기하고
노르망디로 진군을 시작했어
포미니 전투를 통해 노르망디를 회복한 샤를 7세는
사령관에게 장 뷔로를 임명하여
프랑스 남부 지역 수복을 명했어
보르도 지역으로 진격한 장 뷔로는
카스티용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남부 프랑스 영토를 회복 할 수 있었어
<카스티용 전투>
이렇게 카스티용 전투에서 승리 함으로써 프랑스는 칼레 항을 제외한
모든 프랑스 영토를 수복 할 수 있었어
칼레항도 1558년에 인도 받으로써 프랑스 영토내의
잉글랜드 세력을 모두 축출했지
이렇게 프랑스와 잉글랜드 전쟁은 막을 내렸어
그 후 잉글랜드는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에
장미전쟁이 일어나 혼돈에 빠지게돼
그러나 프랑스는 그 후 큰 혼란없이
서서히 유럽의 패자가 되는 준비를 하게되어
너무 묻혀서 재업해
못 본 사람들은 잼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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