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서양사 약빨도
떨어졌는가? ㅋㅋ
이번에는 바실리우스 2세에
대해 써보도록 할께
<비잔틴 제국>
1. 바실리우스 1세와 마케도니아 왕조
<중세유럽의 두 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 비잔틴 제국은
급격히 운지하기 시작해
헤라클리우스 황제 시기에 잠시 회복하긴 하였지만
이슬람 제국에게 시리아, 튀니지 , 이집트를 빼앗기며
남부 주요 곡창지대를 전부 상실하고 말았어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전성기 영토>
이슬람제국에게 콘스탄티노플까지 공격당하게 되자
다행히 그리스의 불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아나톨리아 반도 즉 소아시아 지역은 계속적으로
이슬람의 공격을 받게 되었어
<그리스의 불>
- 아직 학설 대립이 많지만 대략 화염방사기였단 학설이 주류임-
이렇게 되자 비잔틴 제국은
테마제도를 시행하였어
테마제도란 군사들에게 토지를 지급하고
그 주둔지에 살게했으며
사령관이 행정관을 겸하는
전시비상체제야
이러던 찰나에
814년에는 발칸 반도 북부에서 발호한
불가르족의 제 1 불가리아 제국에게
마케도니아마저 빼앗기는 상황이었지
동로마로 건국 된 후 최대의 위기였어
<불가리아 제국의 영토와 축소된 비잔틴 제국>
이런 시기에 바실리우스 1세가 나타나
바실리우스 1세는 아르메니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불가르족의 침입으로 마케도니아로 노예로 끌려가
어린 시절을 마케도니아에서 보냈기에
그는 스스로 마케도니아 인으로 생각했지
<마케도니아 왕조의 시작 바실리우스 1세>
불가르족에게서 탈출한 바실리우스는
우연히 미카엘 3세에게 발견되고
글은 모르고 무식하였지만 힘이 세고 기마술에 능한
그를 미카엘 3세는
시종장으로 두고 총애했어
후에 그는 급격히 권력의 중심부로 오르고
미카엘 3세의 외숙을 몰아내고
자신의 주군인 미카엘 3세마저 암살해
그리고 그는 바실리우스 1세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비잔텐 제국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를 열어
<바실리우스 1세 시대 비잔틴 제국>
2. 불가르의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 등장
바실리우스 1세 이후 레오 6세, 콘스탄티누스 7세를 거치며
비잔틴 제국은 소아시아 영토를 회복하고
문화적, 경제적 부흥을 일구어내었어
그리고 로마누스 2세의 아들 바실리우스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불가르의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 958~1025>
바실리우스 1세는 적통으로
정당한 황위 계승권이 있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니케포루스 1세와 요한네스 1에게
황위를 빼앗기게돼
976년 요한네스 1세가 병사하면서
드디어 황제가 되었지만
모든 권력은 시종장 레카페누스에게 빼앗긴채
감금 생활을 당했어
<바실리우스 2세 >
거기다가 비잔틴 제국의 명장 2명이
반란을 일으켜 큰 위기에 빠졌으나
키예프 공국의 블라드미르가 보내준 7000의 병력으로
반란에 진압하는데 성공해
반란 진압에 성공한 그는
7000명의 병력을 자신의 근위대로 삼고
그 무력을 바탕으로 시종장 레카페누스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해
이 7000명의 근위대가 그 유명한 바랑기안 가드야
<바실리우스 2세와 바랑기안 가드>
권력을 공고히 한 바실리우스 2세는
병력을 소집해 제국의 북방을 유린하는
불가리아 제국 정벌을 시작해
<바실리우스 2세의 진군>
당시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 사무엘은 영토를 확장하며
자신이 발칸반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야망을 품고 있었어
바실리우스 2세는 우선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친교를 맺고
이들의 지원을 얻어 발칸반도 전쟁을 시작했어
989년부터 시작한 수차례의 원정으로
바실리우스 2세는 상당한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어
당시 그는 포로로 잡은 불가리아 제국 병사들을
백명 단위로 나누어서
99명의 병사들은 두 눈을 뽑고 나머지 1명의 병사에게
그들을 인도해 불가리아 제국에 풀어줬어
이런 이들만 수만명에 달했다고해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 사무엘은 자신의 병사 수만명이
눈이 뽑힌채 돌아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쓰러지게돼 그 후 얼마안되서 그 충격으로 죽고말어
<불가르족을 섬멸한는 바랑기안 가드>
그뿐만 아니라 불가르족의 마을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을 시작해
약탈할때도 여자를 제외한 남자,아이,노인은 모조리 죽이고
병사들에게 그 가족의 시체 앞에서 여자들을 강간하라고 지시했지
그 후 그 여자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을 죽여 다시 불가리아 제국으로 보내
이외에도 많지만 생략할께
이런 악행으로 바실리우스 2세는
'불가르족의 학살자'라고
불리게돼
<불가르족에 대한 학살>
불가리아 제국을 압박하고 있을 때
995년에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가
비잔틴 제국의 소아시아일대를 공격하기 시작했어
이에 바실리우스 2세는
병력을 잠시 물리고
소아시아로 군대를 진군시켜
<동부 원정을 시작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모든 병력을 기병으로 전환시킨
바실리우스 2세는 16일만에 소아시아 전선에 도달하게돼
<바실리우스 2세 진군로와 카탁플라타이>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기병을 전면에 내세우고
파티마 왕조를 몰아친 끝에
소아시아 반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는데 성공해
<동부를 평정하다>
이후 1000년부터 다시 불가리아 제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해
불가리아 제국은 그동안 방어준비를 철저히 해왔어
두번째 불가리아 원정은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흘러갔어
하지만 이러한 공방전은 1014년 클라디온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끝을 맺게돼
<클라디온 전투와 2차 불가리아 원정>
이후 불가리아 제국은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결국 다키아 공방전을 끝으로
비잔틴 제국에 흡수되고 말아
<바실리우스 대제의 영토확장>
3. 치세 말년과 비잔틴 제국의 몰락
1018년 불갈리아 제국을 멸망시킨
바실리우스 2세는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세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위상을 과시했어
<바실리우스 2세와 근위대 그리고 비잔틴 제국 황실기>
하지만 1019년 시칠리아에 노르만족이
점령하면서 이탈리아에 전운이 들이웠어
바실리우스 2세는 칸나이에서 노르만족 침공을 막아낸뒤
시칠리아 원정을 준비하지만
1025년에 67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말아
바실리우스 2세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없어 그의 동생인 콘스탄티누스 8세가 황위에 올라
소작농에 대한 개혁을 하고 잃어버린 영토 수복에 앞장 섰던 그를
사람들은 유스티아누스 대제 이후 처음으로 대제의 호칭을 수여했어
<1025년 제국 의 영토>
바실리우스 2세 사후
그이 동생은 콘스탄티누스 8세는 무능하였고
검소하던 형과는 달리 사치가 심해서
비잔틴 제국의 국고는 바닥나게돼
이에 바실리우스 치세에 숨죽이고 지내던
아나톨리아의 대귀족들이 발호하기 시작했어
콘스탄티누스 8세가 제위 3년만에 급사하자
다시 그의 동생이 제위를 이었고 무능함은 계속 지속되었지
그리고 그녀의 딸 테오도라 여제를 마지막으로
마케도니아 왕조는 단절되고 두카스 왕조가 시작돼
그리고 1071년에는 소아시아에 침범한 새로운 제국 셀주크 투르크에게
만지게르트 전투에서 패해 소아시아 지배권을 상실해버려
<만지케르트 전투와 축소 된 영토>
이후 일게일들도 잘알다시피 비잔틴 제국은 급격히 운지해
콤네누스 왕조 시대에 조금 부흥하는가 싶지만
결국 아나톨리아 반도는 영원히 상실하게되고
훗날 오스만제국에게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
멸망하게되지
하 진짜 바실리우스 2세는 자료가 너무 없어서 힘드노
아무튼 잼게 보길바래
1줄요약
바실리우스 2세 이후 비잔틴 제국 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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