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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문화 ::

동방 불멸의 제국 1부 - 오스만 제국의 탄생과 성장

안녕 일게이들와

나폴레옹 연재를 끝내고

이번에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 풀어볼려고해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터키의 전신이라

흥미를 갖고 봤으면 좋겠어





<오스만 제국 최대 영토>

1. 투르크 족, 서아시아에 자리잡다

투르크족.jpg

<투르크족 전사>

-갑옷이 무척 익숙하다-

우선 오스만 제국을 알아보기 전에

투르크족에 대해 알아보자

투르크족은 중국의 천산 즉 알타이 산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져

알타이, 우리에게 익숙할거야

잘나가는 일게이부터 백수 일게이까지

모두 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쓴다고 학자들이 추정하고 있어

투르크는 한자로 하면 돌궐(突厥)이야

돌궐로 들으니 투르크를 모르는 일게이들도 잘알거야

돌궐족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땔 수 없는 관계야

어쨌든 이 천산인근에 거주하던 투르크족이

서서히 중동과 유럽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어

이후 토테미즘을 믿던 투르크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하였고 스스로를 술탄이라 칭했어

술탄은 통치자, 권위의 아랍말로

쉽게 말해 왕이나 황제로 보면돼

투르크족의 이동.jpg

<투르크족의 이동>

이동을 시작한 투르크족들은 중앙아시아에

수 많은 나라를 세웠고 멸망시켜 나갔어

그 일족 중 셀주크가 이끄는 부족이

강성해져서 서아시아로 대대적인 진출을 시작하면서

투르크의 강력한 제국인 셀주크 왕조가 시작되었어

셀주크 제국이 서아시아로 진출하면서 필연적으로

동방의 맹주인 비잔틴 제국과 부딪칠 수 밖에 없었어

셀주크 투르크 최대 영토.jpg

<셀주크 제국의 최대영토>

-연살색이 발원지-

비록 바실리우스 2세 이후

급격히 국력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동방의 맹주를 자처하는 제국으로서

셀주크의 확장에 크게 경계하였고

결국 두 강국은 충돌했어

만지케르트 전투 전 소아시아.jpg만지케르트 전투2.jpg

<당시 소아시아 국경선과 만지케르트 전투>

1071년 8월 셀주크의 술탄 아르슬란과

비잔틴 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2세는

아르메니아 지역의 만지케르트에서 격돌했어

비잔틴 제국은 7만 병력을 보유하며

3만 가량의 셀주크군보다 압도적이었지만

막강한 셀주크 기병대의 공격에

주력군 전부가 괴멸하고

로마누스 2세는 포로가 되고말아

이 전투로 비잔틴 제국은 급격히 운지하고

동방의 강자는 셀주크 제국이 차지하게돼

만지케르트 전투.jpg

<포로가 되어버린 황제와 바라보는 술탄>

이후 셀주크 제국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1092년 술탄의 자녀간에 권력다툼이 발생하고

1096년에 시작 된 십자군 전쟁까지 벌어지자

셀주크 제군은 수 개의 나라로 분열이 되고말아

그 분열 된 나라 중 아나톨리아 반도에 롬셀주크 왕조가 성립되었어

룸술탄국.png

<롬셀주크 왕조 영토>

일명 롬 술탄국은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끝없이 십자군과 충돌했어

거기다가 동쪽에서 전투민족 몽골성님이 강림하고

결국엔 몽골성님이 세운 일한국의 속국이 되고 말아

속국이 되는 치욕에도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지만

결국엔 1308년 마지막 술탄이 급사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려

1300년경 발칸.jpg

<1300년경 소아시아>

2. 오스만 왕조의 건국

한편 롬술탄국이 무너지는 사이

아나톨리아 반도의 투르크족 중

오스만이 이끄만 카이민족이 부상하기 시작해

이후 롬술탄국 서쪽에 자리잡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돼

이 때 그가 이끌던 병력은 기병 400기가 전부였어

서쪽에 자리잡은 오스만은

1299년 자신의 이름을 따 오스만국을 건국하였어

오스만 제국의 본래 명칭은

'오스만 가문의 숭고한 국가' 이지만

서양인들은 오스만 제국이라고 불러서

우리에게도 오스만 제국이라고 알려지게돼

오스만 1세.jpg오스만 1세 영토.jpg

<오스만 1세와 영토확장>

건국에 성공한 오스만 1세는

그가 죽는 1326년까지

대대적인 영토확장을 시작해

그는 비잔틴 제국의 요새 부르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하던 중 결국 점령을 못보고

눈을 감고 말아

이후 그의 유지는 아들 오르한 1세에게 돌아가고

오르한 1세는 흩어진 투르크 족을 규합하는 한 편

풍족해진 재정으로 대대적으로 용병을 고용하여

확장정책을 펼쳐나가

오르한 1세.jpg오르한 1세 영토.jpg

<오르한 1세와 그의 영토 확장>

1345년 아나톨리아 반도의 공국들을 합병한 오르한 1세는

비잔틴 제국의 내분을 틈타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1347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일대를 점령하기도해

이후 수도를 부르사로 천도하고

화폐제도 개혁, 이슬람 사원 건축등 국내를 정비하고

이런 노력으로 오스만국은 본격적인 국가체제를 갖추어나가

3. 오스만 왕조, 발칸반도에 진출하다

오스만 제국 깃발.jpg

<초기 오스만 제국 국기>

1360년 오르한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무라드가 술탄의 지위에

오르면서 무라드 1세가 되었어

무라드 1세.jpg

<무라드 1세>

그는 아버지가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재상의 수를 늘리고 수장에 大와자르라는 직책을 만들어

그리고 군사체제도 대대적으로 개선하여

보병대인 예니체리와 중갑기병인 시파히 부대를 창설해

오스만 기마무사.jpg예니체리 변천사.jpg

<시파히 기병대와 예니체리 변천사>

예니체리에 대해선 일게이들도 들어봤을거야

발칸 반도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집의 아이들을 노예로

데려와서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고 군사훈련을 시켜

이 아이들 중 일부는 근위기병대로 나머지는 예니체리부대로 편성하게돼

예니체리로 편성된 이들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지키고

결혼은 금지되었으며 엄격한 금욕생활에 병영에서 숙식했어

그리고 다른 병사들과 달리 갑옷도 입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은 칼, 창, 활, 도끼 후에는 총까지

능슥하게 다루며 높은 봉급과 명예로

당시 오스만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했어

훗날 군기 문란으로 해체되긴 하지만 말이야

그건 먼 훗날이니 언급하지 않을게

무라드 예니체리 사열식.jpg

<무라드 1세의 예니체리 사열식>

이런 군제개혁을 바탕으로 무라드 1세는

비잔틴 제국의 아드리아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명칭을 에드리네로 바꾸어 새로운 수도로 삼아

그리고 1366년 발칸반도로 대대적인 진군을 시작해

당시 세르비아는 왕조가 단절되고 여러개의 공국을 나뉘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무라드 1세의 침공이 시작되자

가장 강한 세력인 라자르를 중심으로 병력을 집결하여

오스만에 대항했어

세르비아 왕 라자르.jpg

<세르비아 지도자 라자르>

불가리아를 점령하고 서서히 발칸 반도를 잠식하던

무라드 1세의 오스만군은

마차라강 전투의 승리로 불가리아 일대의 영유권을 확고히 했어

이후 1380년 세르비아를 향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이에 라자르는 2만 5천의 병력으로 코소보에 진을 쳤고

4만에 달하는 오스만군과 전투를 벌였어

일명 1차 코소보 전투의 시작이야

1차 코소보 전투.png코소보 전투.jpg

< 1차 코소보 전투>

세르비아는 중기병으로 처음에 우세한 전투를 벌였지만

오스만군의 숫자에 점점 밀리기 시작해

이 때 오스만 제국에 큰 일이 발생해

세르비아측에서 탈영병으로 위장한

밀로스 오블리크라는 장수가

무라드 1세를 독칼로 찌르는데 성공했고

그만 무라드 1세는 죽고 말아

오스만 내부에 큰 혼란이 발생하였지만

무라드 1세의 장남인 바지예드는

그의 경쟁자인 동생 야코브를 살해하고

군권을 장악하여 재빨리 군을 정비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해

이에 다시 세르비아군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궤멸해버려

이 전투로 라자르를 비롯한 지휘관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아

코소보 전투2.jpg

<오스만 제국군 대승을 거두다>

비록 오스만 제국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무라드 1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었고

세르비아를 속국으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아나톨리아 반도로 철수해

본국으로 귀환한 바지예드는

국가를 정비하고

1394년 다시 발칸 반도 원정을 시작해

무라드 1세 영토.jpg바예지드 1세.jpg

<무라드 1세 시대 영토와 바지예드 1세>

발칸의 여러 나라들을 굴복시킨 바지예드 1세는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하였고

이에 위기를 느낀 비잔틴 제국은

서유럽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교황 보니사피오 9세는 십자군을 파견해

프랑스를 주축으로 잉글랜드, 신성로마제국, 헝가리등

서유럽의 십자군의 수는 12만에 달했고

파죽지세로 발칸반도로 진입해

이에 바지예드 1세는 군을 한 곳에 모았고

니코폴리스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어

니코폴리스 전투.jpg니코폴리스 전투도.jpg

<니코폴리스 전투도>

각국의 군이 모였던터라 지휘 계통에

문제가 있었던 십자군은

바지예드 1세의 지휘에 신속하게 움직이는

오스만 제국군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중장기병 격돌에서 패하면서

병력이 궤멸되어 버려

오스만 제국의 대승이었어

전투가 종료되자 바지예드 1세는

프랑스 기사들이 전쟁 시작전

오스만 정찰병 포로들을 살해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1만명에 달하는 십자군 포로를 모두 처형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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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를 학살하는 바지예드 1세>

발칸 반도를 평정하고 곧이어

아나톨리아 반도의 공국들을 평정한

바지예드 1세는 정식으로 이슬람권 국가들이

술탄으로 인정하였어

바예지드 1세 시대.gif

<바지예드 1세 시대 오스만 제국>

이후 바지예드 1세의 영광은 계속 되는 듯 하였으나

동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험이 다가왔어

티무르 깃발.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