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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문화 ::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ALABOJA

우리나라는 유네스코에 1988년에 가입했으며


9개의 문화유산, 1개의 자연유산, 11개의 기록유산을 등재한 상태임.


이 정도면 어디 가서 크게 꿀리는 편은 아님. 특히 기록유산은 독보적.


(일본편에서 우리나라 기록 유산이 12개, 세계 3위라고 했는데 11개 세계 5위로 정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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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과 개성 역사 지구라는 2개의 문화유산을 보유중.


이 글에선 엄연히 대한민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만 다루겠음.











주의


이 글은 유네스코의 공식 입장, 등재 사유, 평가 등을 번역한 것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 정리, 해설한 것임.


글쓴이 개인의 견해와는 무관함.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자연유산, 기록유산만을 다뤘고 인류무형유산은 제외했음. (그것까지 하면 너무 많아서..)


유산의 명칭은 유네스코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규정한 공식 명칭을 따름.











문화유산



등재기준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


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무슨 말이 이렇게 어렵盧?

이걸 읽으면서 또 느끼는거지만 후지산은 대체 어케 문화유산이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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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1995년 지정)

경상북도 경주에 위치.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고대 불교 유적.

서기 8세기 후반경 완공.

석굴암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묘사한 조각상이고 불국사는 이름 그대로 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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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과 불국사의 석조 기단 및 두 개의 석탑은 동북아시아 고대 불교 예술의 걸작으로 꼽힘.

불국사 내의 석조 유산은 부분적인 보수를 거쳤지만 신라 시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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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의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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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단골 코스이기도 했던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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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Jongmyo Shrine, 1995년 지정)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유교 사당.


태조 이성계가 1394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그 해부터 착공해서 10개월만에 완공.


임진왜란때 파괴되었다가 광해군때 복구됨.


16세기 이후 상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왔음.


아무래도 죽은 자들의 혼령을 위한 건축물이다 보니 엄숙함과 단아함이 느껴짐.


오늘날까지도 정기적으로 제례가 행해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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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장경판전

(Haeinsa Temple Janggyeong Panjeon, the Depositories for the Tripitaka Koreana Woodblocks, 1995년 지정)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위치.


13세기 제작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목판 보관용 건축물.


15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


처음부터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고 창건 당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


대장경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서 지어진 세계 유일의 건축물로


효과적 보관을 위해 자연통풍과 온도, 습도의 적절한 조절이 가능하도록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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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1997년 지정)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 궁궐.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경복궁의 지위가 흔들린 뒤


태종에 의해 15세기초에 정궁인 경복궁 동쪽에 이궁으로 지어짐.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소실되었으나 소실된 궁궐중 가장 먼저 재건축되어


경복궁을 대신해 250여년간 정궁 역할을 했음.


자연적인 산세와 지형을 살리기 위해 자유롭게 건물을 배치한


풍수지리 사상과 유교가 조화된 조선 궁궐 건축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평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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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때 그려진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의 당시 모습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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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Hwaseong Fortress, 1997년 지정)


경기도 수원에 있는 조선시대 성곽.


길이 5.4km.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 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신도시 건설을 위해 방어 목적으로 조성.


실학파의 거두였던 정약용에 의해 설계되었음.


전통적인 축성 기법에 서양의 기술을 활용.


거중기, 도르래를 비롯한 건축 장비들이 화성 건축을 위해 제작됨.


동양 성곽 건축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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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때 충격적으로 파손된 화성의 모습..ㅠ


파손된 부분은 <화성 성역 의궤>를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에 따라 복원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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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역사 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2000년 지정)


왕릉, 산성, 궁궐지, 조각, 탑 등 신라 시대의 여러 불교유적과 생활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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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2000년 지정)


거대한 바위를 이용해 만든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


기원전 1000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한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


한국의 청동기 시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서


보존 상태가 매우 존나 뛰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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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2009년 지정)


무덤이 어디 있느냐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데,


특히 왕릉은 왕족들의 무덤이기 때문에 예법에 맞춰 세심하게 건축되었음.


조선 왕릉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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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마을 : 하회와 양동

(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 2010년 지정)


한국을 대표하는 씨족 마을.


조선 시대 촌락의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음.


양반 가옥과 평민 가옥들이 조화를 이룸.


양동 마을은 80년대에도 한국의 다른 마을들처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았음.


1984년 이후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보호되는중.











자연유산



등재기준


1.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2. 생명의 기록이나, 지형 발전상의 지질학적 주요 진행과정, 지형학이나 자연지리학적 측면의

중요 특징을 포함해 지구 역사상 주요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


3. 육상, 민물, 해안 및 해양 생태계와 동·식물 군락의 진화 및 발전에 있어 생태학적, 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


4.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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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

(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 2007년 지정)


현재 우리나라의 유일한 유네스코 자연유산.


제주 화산섬은 총면적 18,886ha.


바다에서 솟아오른 요새 모양의 성산일출봉 응회구가 인상적임.


용암동굴은 천장과 바닥이 다양한 색의 동굴 생성물로 이뤄짐.











기록유산


기록유산은 말 그대로 파피루스든 종이든 돌이든 그림이든 필사본이든


도서, 신문, 포스터 할 것 없이 오디오, 영화도 포함한 기록물.


단순히 오래됐다고 등재되는게 아니라 후세에 알릴 가치가 있는 유산을 뜻함.



전통적으로 기록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는 분야로


2013년 난중일기와 새마을 운동 기록물의 등재로


전근대와 근현대에 걸쳐 무려 11개의 기록유산이 있음.


이는 아시아 1위, 세계 5위임.


KIA ~ 기록뽕에 취하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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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1997년 지정)


조선을 건립한 태조부터 철종까지 470여년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실록의 총칭.


총 2077책.


(고종 실록과 순종 실록은 일제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실록으로 인정 안됨.)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면서도 포괄적인 역사 기록물.


후임 왕이 전왕의 실록 편찬을 명하면 사초와 승정원 일기 등을 토대로 작성되었음.


정치, 군사, 사회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전통 예술, 공예, 종교 등을 모두 포괄했으며


사관을 제외한 누구도 사초의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왕도 예외는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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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짤은 오대산 사고)


철저하게 백업에 백업을 거듭하여 여러 지방 사고에서 보관.


전쟁이나 재난으로 소실되는 것을 대비했음.


임진왜란때 전주 사고를 제외한 사고가 몽땅 불타버려 전주 사고 사본을 근거로 다시 이전 실록을 4부씩 인쇄하기도 했음.


실록은 아무리 국가재정이 어려워도 편찬사업을 계속했고


벌레와 습기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포쇄(책을 바람에 쐬는 것)했음.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가 동경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겼다가 관동 대지진때 대부분이 불타버리고 47권만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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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은 조선왕조를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료임.


현재는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해 국어로 전문이 번역, 전산화되어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공개.


일반인도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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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Hunminjeongum, 1997년 지정)


1446년 음력 9월 반포된 훈민정음 판본.


1443년 창제된 한국 고유의 문자 한글을 공표하는 세종대왕의 공표문과


집현전 학자들의 해설서인 해례본이 포함되어 있음.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함.


세종대왕이 창제한 단 28자의 훈민정음은


한국인의 음운체계를 반영하여 한국의 문자체계의 혁신을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 한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한국인의 말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음.


한국 정부는 양력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발간일을 계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 (작년부터 다시 공휴일!)


현재 유네스코에서는 문맹퇴치에게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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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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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직지심체요절 하권

(Buljo jikji simche yo jeol (vol. II), 2001년 지정)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고려말 백운화상이 1377년 펴낸 불교서적으로 원나라에서 받아온


불조직지심체요절의 내용을 대폭 늘려 상.하로 엮은 것인데 현재는 하권만 존재함.


(유네스코에는 원본이 존재하는 것만 등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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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8세기초에 목판 인쇄술이 발달했고


13세기 초 고려에서는 가동 금속활자라는 새로운 인쇄기술이 개발됨.


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직지가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술의 증거로서 남아있음.


(유럽의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빠른건데.. 한자와 알파벳이라는 문자의 차이,

그리고 사회, 신분적 요인으로 인한 대중화의 한계로 발전속도에는 차이가 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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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일기

(Seungjeongwon Ilgi, the Diaries of the Royal Secretariat, 2001년 지정)


승정원은 조선 시대 국왕의 비서기관으로서


국왕의 일상을 날마다 일기로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음.


기관 이름이 수차례 변경됨에 따라 일기의 명칭도 바뀌어 왔지만


이를 모두 통틀어 승정원 일기라 부르며 하나의 기록유산으로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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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Printing woodblocks of the Tripitaka Koreana and miscellaneous Buddhist scriptures, 2007년 지정)


일명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리는 불교 경전의 집대성인 대장경을 새긴 8만여개의 목판.


이 대장경은 고려 현종 재위 당시에 새겨진 초조대장경 목판을 교체하기 위해 새겨졌으며


몽골과 거란족의 침입으로부터 고려를 지키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음.


첫 목판들은 몽골이 침략한 1232년에 만들어졌는데


기나긴 작업은 고려 왕실이 강화도로 옮겨 항전하던 시기에도 계속되어 12년만에 완료.


경판의 길이는 68 ~ 78cm 정도며 폭은 24cm, 무게는 3 ~ 3.5kg 정도.


현재 보존되고 있는 대장경판은 조선 시대에 다시 새긴것까지 합하면 총 81,258판이나 됨.


8만장에 달하는 경판의 서체가 모두 일정하며 틀린 글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유명.


(그걸 또 다 확인해 봤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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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판은 6.25 전쟁중에 소실될 뻔하기도 했음.


전쟁중 빨치산들이 대장경판을 보관하던 해인사에 숨어들자 한국군 F-51 조종사였던 김영환 대령은


미군군사고문단으로부터 해인사 폭격을 명령받았으나


"빨치산은 금방 빠져 나갈 것이나 문화재를 잃으면 복구할 길이 없다."는 이유로 명령을 거부.


그의 말대로 빨치산들은 곧 빠져나가고 대장경은 무사할 수 있었으나


명령불복종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그 동안의 전공 덕분에 죄는 무마됨.


이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그에게 금관훈장을 추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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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의궤

(Uigwe :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2007년 지정)


조선왕조 500년의 왕실 의례에 관한 기록물.


무려 3895권이 넘는 책으로 시대와 주제별로 분류 구성되었음.


혼인, 장례, 연회, 외국 사신 환대 같은 왕실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글과 그림으로 묘사.


궁전 건축과 묘 축조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담고 있음.


정조가 사도세자 묘를 방문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길이가 15.4m에 이름.


이렇게 행사와 의식에 대해 상세하게 편찬한 기록물은 동서양을 통틀에 세계 어디에도 전무함. (진짜?)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없음.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에서 의궤 300여 책을 약탈해갔는데


2011년이 되서야 5년 단위 임대라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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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의궤에 포함된 화성 성역 의궤


1794년부터 1796년까지 수원 화성 축조의 기록.


조선 후기 축성공사의 실태와 무기 발달에 대응한 축성법, 군사 배치 규정, 예산과 지출 내역등을 잘 나타냄.


주요 건축물과 도구들을 도면으로 실음.


의궤로서는 드물게 활자로 인쇄돼 널리 반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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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uibogam: Principles and Practice of Eastern Medicine, 2009년 지정)



1613년 편찬된 백과사전적 의서.


선조의 명에 따라 의학전문가들과 문인들의 협력하에 우리 모두가 다 아는 허준이 편찬했음.


2000년 동안 축적된 동아시아 의학 지식과 임상 경험을 하나의 전집으로 집대성.



허준이 손으로 직접 써서 광해군에게 보여준 필사본은 현재 남아있지 않음.


유네스코에서는 예방의학 측면과 17세기말에 이미 국가가 일반 백성들을 위한 공공 의료사업을 추진한것을 높이 평가하여


기록유산에 등재.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의료 서비스 개념은 서양에서는 19세기가 되서야 등장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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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

(Human Rights Documentary Heritage 1980 Archives for the May 18th Democratic Uprising against, 2011년 지정)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에 광주에서 일어난 계엄령 확대 반대, 반정부 시위와 공수특전단의 봉쇄, 교전, 진압,


그리고 이에 대한 처벌, 보상와 관련된 문서(포스터, 취재수첩, 행정문서 및 재판기록), 사진, 영상.


광주와 주변지역에서의 시민 사망자는 165명, 실종자는 76명.


군사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공개적 논의를 금지했는데


1987년 대규모 민주화 투쟁 이후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고 나서 1989년 광주사태라는 명칭이


대통령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 개칭.


1995년에는 가해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됨.


이와 관련된 두 전직 대통령과 고위 관리에 대한 사법 조치가 이뤄져


진상조사 - 가해자 처벌 - 명예회복 - 보상 - 기념사업이라는 선례를 남김.


한국의 민주화 쟁취는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항쟁이 일어남.


유네스코 등재 이후 폭동, 반란, 봉기를 의미하는 Uprising이라는 표현 때문에 일베에서도 숱한 떡밥을 뿌린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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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록

(Ilseongnok: Records of Daily Reflections, 2011년 지정)


제목의 의미는 '하루의 반성문'


정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의 일상과 학문에 관해 성찰하며 쓴 일기에서 유래.


일반 백성들의 상소와 그에 따른 조치, 암행어사 보고서, 외교관련 문서, 사신들의 보고서 등


조선시대 다른 역사 기록문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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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Nanjung Ilgi: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 2013년 지정)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쓴 8개의 전중일기.


임진왜란 발발 직후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7년 동안의 기간을 총망라해 기록.


개인이 쓴 일기 형식의 기록으로서 전쟁중 해군 지휘관이 매일 전투 상황과


당시의 기후, 지형, 일반 서민들의 삶, 개인의 소회를 생생하게 담은 기록물.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14세대에 걸쳐 보관되어 왔다는 점도 높히 평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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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 기록물

(Archives of Saemaul Undong (New Community Movement), 2013년 지정)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빈곤퇴치, 생활 환경 개선, 영농의 과학화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한국 근대화의 기록.


여기에는 통령의 연설문과 결재문서, 행정부처의 새마을 사업 공문,


마을 단위의 사업서류, 새마을지도자들의 성공사례 원고와 편지,


민들의 편지, 새마을 교재, 관련 사진과 영상 등 새마을 운동의 진행과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2만 2천여 건의 자료가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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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 당시의 대통령 결재문서, 행정부처의 공문, 시민들의 편지, 새마을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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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기록물에 담긴 민참여를 통한 농촌개발은 국제사회로부터


효과적인 빈곤퇴치 방안이자 대외원조 대안으로 인정받음.



1970년대부터 2011년까지 129개국에서 5만3천명이 방한해 새마을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UN 세계식량기구와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 등은 빈곤퇴치 모델로 새마을운동을 채택.


이 밖에도 2010년까지 18개 국가에서 157개 새마을사업이 전개되는 등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개발도상국의 학습자료로도 활용되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