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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 군대 ::

8사단 오뚜기의 동해지구 지연작전에 대해 아라보자

오밤중이지만 호국보훈의 달 중에서도 마지막 날인 오늘.

선배님들이 한국전 초기 극도로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임전무퇴의 의지로 적의 침공을 막아낸 작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어.


전에 일베간 글에도 썼지만 초기 한국전에서는 17연대의 옹진반도 철수, 1사단의 사단편제 유지후 철수, 혼성 3,7 사단의 한강방어선 전투, 6사단의 춘천방어전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의외로 8사단의 동해지구 지연작전은 안알려져 있는 것 같아 아쉽다.


8사단이 지연전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때 이른 동해 연안 및 대관령 내륙지역 전선붕괴로 아군이 위기에 빠질뻔 했음에도 말이지.


자 각설하고 개전시 8사단이 어떤 부대였는지 부터 알아볼게.





이분들 채소 알보병시절 행군하다 팔다리 다 닳아버리신 분들;;;



8사단은 1949년 6월 제 10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되었어. 그리고 7월 21연대를 편제에 포함시킴으로서 2개연대와 직할대를 갖춘 '감편사단'으로 거듭나.


당시 3개연대와 직할대를 갖춘 완편사단들은 38선 경비임무 및 북한군이 걸어오는 국지도발 방어임무를 맡았고, 나머지 감편사단들은 후방 빨치산과 같은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는데, 8사단만이 감편사단 중에서 유일하게 38선 경비임무를 맡아 한국전 개전당시 북한군과 교전하게 된다.


6.25일 새벽 4시(북한애들의 선발대는 새벽 3시경엔 동해안에 상륙을 시작했다), 8사단 사령부와 10연대는 강릉에서 38선 경비 및 오대산지구 공비토벌 임무를 수행중이었고, 21연대는 삼척에서 일대 공비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쪽으로 밀고내려오는 북한애들의 전력이 아 8사단 보다 압도적 우위였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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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애들은 5사단과 766부대라 불리운 연대급 유격대, 그리고 38경비여단이라고 내무부 예하 보안부대 같은애들이었는데 임마들을 선두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병력만 17,000명에 30여문의 곡사포를 장비한 부대로 당시 7,000여명의 인원에 10여문의 M3곡사포만을 보유한 아군 포병에 비하면 엄청난 전력차였다.


8사단에게 다행인점은 북한애들도 동해안은 주전선이 아니라 부차적 전선이라고 생각해서 기계화전력이 거의 배치되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덕분에 8사단은 타 사단들과 달리 소위 '전차 쇼크'를 덜받은 메리트가 있었다.


뭐 메리트는 메리트지만 타사단 지역 못지 않은 전력차 덕분에 개전초기 '이성가' 사단장 예하 장병들은 숱한 고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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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8사단장이셨던 이성가 대령.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중국 남경군관학교를 졸업해 국민당군 장교로 중일전쟁에 참전했고, 독립이후엔 국군에 투신해 여순반란사건 진압에서 활약한 ㅅㅌㅊ 지휘관이다.



전선으로 돌아가서.


북한 5사단 10연대(10연대 VS 10연대 잼)을 국군 8사단 10연대가 강릉에서 막고 있는동안 삼척에 주둔중인 21연대가 증원되어 북한넘들을 작살낸다는 전략이었는데, 중간에 766부대랑 공비들이 강릉-삼척간 도로를 봉쇄해 버린 것이었다.


근데, 이성가 사단장은 이를 일찍이 파악하고, 21연대에게 우회를 명령한 덕분에 아군은 분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어.


북한애들 작전 ㅎㅌㅊ 잼?


문제는 강릉에 주둔한 아 10연대 였는데, 북한애들과의 화력차이가 너무심해 전선유지가 힘들자 강릉북방의 연곡천으로 주저항선을 옮기게 된다.


이때 나선게 국군의 자랑 포병대 그 중에서도 18포병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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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3 곡사포는 미 공수부대용으로 개조된 105mm포로서(똥포잼) 사거리가 적 122mm보다 한참은 짧았다... 그래서 나중에 천조국 형님들이 M2 105mm곡사포를 공여하고 지금도 국군은 마르고 닳도록 이것을 쓰고 있음잼.



신기하게도 포 사정거리는 북한군이 더 길지만 항상 국군 포병대에게 고전하게 되는데, 북한애들의 지나친 과신과 훈련부족이 요인이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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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포병대대의 탄막이 펼쳐지자 종대로 남진하던 북한군 10연대와 38경비여단은 그야말로 두부박살잼을 당하고, 아군은 연곡천의 주저항선을 여유있게 강화하며 북한애들의 후속공세에 대비할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6월 26일 저녁 마침내 적을 우회한 21연대가 강릉 외곽에 도착해 10연대는 압도적 전력의 적으로 부터의 압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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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이야 다소간 여유를 찾았지만 북한애들은 어땠겠노? 전력은 근 3~4배 차이인데 국군한테 빠따로 찜질이나 당하고 있고... 이기 밥쳐묵고 뭐했노 이기야?


그래서 북한애들은 가진 전력을 주머니속 먼지까지 탈탈털어 연곡천인근에 집중시켰고, 아군이 수복한 121고지에 공세를 펼쳐 이를 함락시킨 후 아군 주저항선으로 밀어 닥친다.


대륙애들도 아니고 머릿수에다가 워낙 차이가 심하던 화력까지 집중되니 아군의 주저항선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군 전선과의 단절과 방어선 붕괴를 우려한 지휘부의 명령으로 선배님들은 눈물의 후퇴를 개시한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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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틈새로 침투한 북한애들이 18포병대대 포진지로 난입하게 되는데, 포병 선배님들의 전설적 사투가 시작된다.


적들이 포병진지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즉각 수평사격을 통해 북한애들에게 불벼락을 보여주었고, 이어 포들을 두고 적 보병 대 아 포병들이 백병전 까지 벌여.


압도적으로 숫적우세를 가진 적과 소수의 아군.


하지만 선배님들은 적 사격속에 포를 이동시켜야 하는 고된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끝끝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2문의 포는 폐쇄기 공이와 포의 타이어를 분해 후 파기하여 적의 노획을 막았어.


물론 이 과정속에서 심우택 이병은 폐쇄기를 안고 장렬히 전사, 한명화 하사는 관측소에서 끝까지 아군의 포사격을 유도하다가 적의 사격에 전사 하는 등 선배님들의 피해도 컸다.


결국 6월 27일 아군은 강릉을 포기하고 후퇴길에 오르지만 3일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낸 ㅆㅅㅌㅊ 지연전 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후퇴작전에서 이성가 대령은 이미 21연대가 확보해둔 대관령 통로를 통해 아군전선과의 접촉을 유지하려 하면서 지연전은 철수전으로 변해.


문제는 육본 및 6사단과 연락이 끊어졌다는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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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연락이 안되면 핸드폰이라도 쓰겠지만 당시만해도 인프라가 ㅆㅎㅌㅊ라 사단간 혹은 육본-사단간 통신은 M8 그레이하운드에 탑재된 무전기를 사용해야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유선라인도 따로 있었겠지만 서도.


육본과 연락은 끊어졌고, 아군 전선의 상황은 모른다.


하지만 정찰결과 북한군은 시가지 점령이후 정신머리가 확 올라갔다 확 떨어져서 경계조차도 소홀히 하고있었고, 대관령으로 후퇴한 아군의 전력은 온존한 상태였다.


그럼 뭐다? 반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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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새벽. 8사단 오뚜기 용사들은 옆동네 블루스타 용사들 처럼 개전초기를 장식한 대 반격작전에 돌입한다.


강릉이 일시 탈환되었음은 물론 북한애들은 경포대까지 혼비백산하여 쫓겨나갔다.


북한애들 경계작전 ㅎㅌㅊ?


그러나 육본과의 통신라인이 수복되면서 서울함락과 한강일대에서 처절한 지연전을 펼치고 있는 아군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8사단 오뚜기들은 아군과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뒤돌아 철수길에 올라야만 했다.


4일간의 동해안 지구 지연전이 막을 내리고 기나긴 철수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는데,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8사단의 제천철수와 더불어 북한애들이 한 행동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어.


8사단이 내륙으로 철수하면서 동해안 지구는 거의 무주공산이었고, 이를 막을 아군은 부산에서 출발한 3사단 23연대뿐이었는데, 정작 8사단의 반격앞에 잔뜩 쫄은 북한군 766부대와 기타 공비부대들은 남진은 커녕 정규군부대들 옆에 붙어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다.


덕분에 제천으로 철수한 8사단은 6사단의 측면을 맡아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철수길에서도 적의 아군 전선분단 시도를 효과적으로 분쇄하였고, 23연대는 울진 이북까지 북상하여 북한군의 경북침공을 막아낼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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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2달...


8사단은 적의 8월 공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해낸 후 위기해 처한 워커라인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 9월 인천상륙작전과 쌍벽을 이루는 영천대첩에서 북한 15사단 주력을 그야말로 분쇄하는 용맹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개전초기 6사단의 활약을 기억하지만 그 옆엔 8사단이라는 걸출한 용사들 역시 있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 글을 써봤다.


세줄요약


1. 옛날 옛적에 오뚜기 용사들이 있었다.


2. 북한애들 : 요시! 새벽기습 시즌.


3. 오뚜기 용사들의 개머리판에 3달간 북한군 두부박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