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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연예인, 스타 ::

조선의 외과수술의 르네상스를 가져올뻔 했던 임언국 (475.4005)




5대 문종


39세 등창으로 사망




9대 성종


등창과 폐병으로 38세에 사망




11대 중종


57세 등창을 거머리로 치료하다 사망




17대 효종


얼굴에난 창을 치료도중 수전증 걸린 한무당새끼가 혈관을 터트리는 바람에 과다출혈로 41세에 사망




19대 숙종


천연두 휴유증과 스트레스 등창으로 60세에 사망




22대 정조


등창으로 49에 사망



이처럼 많은 왕들이 등창이나 종기로 사망했는데 조선의 의학이라는게 그단순한 종기도 치료하지 못해서 왕이 죽어나가는 한심한 수준이었음





그래도 한무당이 난립하던 막장조선에도 잘하면 조선의 외과의학에 르네상스를 가져올뻔했던 인물이 있었는데 전라도 정읍출신의 임언국이었어


임언국은 공부머리는 병신이었는지 과거에 거듭해서 낙제를 한데다 어머니가 종기로 앓아눕는 바람에 치료법을 찾기위해서 강제로 치종의로 전직이 되었어


조선시대에는 종기나 봉와직염등으로 죽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서 한무당에서 치종의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떨어져나와 종기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들이 존재했어...




하지만 치종의들도 한무당과 마찬가지로 침이나 놓고 고약이나 바르는 수준으로 이새끼나 저새끼나 별차이가 없었어


역설적으로 임언국이 오히려 공부머리가 없었던것이 도움이 되었는데...


임언국은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배워본적이 없었기에 마부나 마의가 말을 종기를 치료하면서 태운재를 환부에 바르는것을 응용해서 환자에게 적용해보는등의 실험과 경험을 중요시 했어



그런식으로 하나씩 경험을 쌓아가다보니



환부에 알맞는 절개도구를 개발하고




십자절개법을 알아내서 절개해서 고름을 빼내고

수술뒤에는 환부를 소금물로 소독하고 참기름과 고약을 발라 2차감염을 막는 방법을 알아내는 경지에 이른다.


예전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수술후 2차감염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기에 조선에서는 외과수술을 하는 침의나 치종의를 아랫것으로 여겼어


하지만 임언국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서 억견적으로 2차감염을 막아내고 절개 봉합등의 외과적 치료의 획기적인 발명을 하게 된거지...


임언국은 이로인해서 만단위가 넘어가는 환자들을 살려냈고 이소식이 조정에 흘러들어가 명종이 직접 임언국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였어...



하지만 임언국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한무당 새끼들과 조정에서는 임언국이 공부를 못했다는것을 트집삼아서 종6품의 주부를 내리게 된다. ㅋㅋㅋ




임언국의 업적에 비해서 그보상은 없는것과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임언국은 치종청에 들어가 후학을 양성하고 치종지남과 치종비방을 남기고 한양 500리안의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어


그후에도 치종의나 침의의 인식이나 환경은 개선된게 없어서 치종의들은 아랫것들로 여겨지면서 임언국이후로는 그렇다할 발전없이 퇴보하였고 어떻게 보면 조선의 의학이 진일보할 기회를 날려 먹는다...


현재 임언국의 치종비방은 교토대학에 사본이 남아있는것이 전부야 이조차도 임진왜란당시에 넘어간것으로 임언국에 대한 평가나 연구역시 한국에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 졌어 ...


2줄요약


1.조선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성과물을 가지고 나와도


2.그걸 발전할 시스템이나 인식자체가 떨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