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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장소] 국가를 어지럽게했던 두 가문









안동 김씨와 풍양조씨




조선 후기에 이 두 집안이 정권을 잡으면서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매우 사리사욕이 강했으며 오로지 정권에만 욕심을 가졌다.



이를 '세도정치'라고 부르며


조선시대에 가장 암울한 시기로 기록된다.







백성을 생각했던 위대한 왕 '정조 대왕'의 죽음으로


어린 왕자 순조가 11살의 나이로 즉위한다.



강력했던 왕권은 자연히 분산되고 권력은 외척들에게 넘어갓다.



이로써 15년동안 나라를 파탄으로 몰아세운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해서 특채권을 남용했으며


왕실의 외척으로 국가를 우롱했다.


또한 매관매직을 성행시켰으며 우수한 인재들의 진출을 견제했다.













지방의 상황은 말이 아니였다. 관리들은 저 두 가문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수탈에 수탈을 더하여 백성을 괴롭혔다.


조선 후기 세도정권의 관권의 강화로 수탈이 심화되어 농민들의 생활은 파탄에 빠지게 됐다.


이때 문에 전국적으로 왕조의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나 미륵신앙이 널리 유행했으며


백성들의 분노를 한계에 도달했다.



전국적으로 일어서는 민중



몰락한 양반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이러한 민란과 국가 내로는 이미 양반체제과 무너지면서 사실상 조선는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막장 집안의 정치는 흥선대원군(이하응)에 등장으로 멈추게된다.


흥선대원군은 재빨리 인사를 개혁하여 안동 김씨를 축출하고 능력에 따른 인재를 등용한다.


또한 그동안 제멋대로 권려를 남용하던 비변사의 기능 축소 했으며


왕권 강화에 힘썼다.




그후...



새로운 외척세력이 등장한다..









민비와 여흥 민씨


그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너무 잘못 알고 있다.


명성황후라는 호칭마저도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다.


그녀의 사치가 극에 달했으며 단 한번도 민생을 살 핀적이 없다.


민씨라는 이유만으로 1000명에 달하는 외척이 국가 관리직에서 일했을만큼


부정부패가 심했다.










3줄요약



조선 후기에 국가를 망친 가문



풍양조씨 안동김씨 여흥민씨



지금와서는 명문가문이라고 깝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