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일게이들아 주말에 심심하고 나른해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여진족과 일본군이 임진왜란당시에 충돌한 사실을 알게됫어 ( 살짝 쇼크 )
인터넷에서 얻은 자료 짤막하게 정리해서 써놓은거니깐 재밋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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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난 뒤 왜군은 엄청난 행군속도로 조선의 북부지방들을 장악하기 시작했어.
당시 행군속도가 얼마나 빨랏나면
일본군이 한양까지 오는데 20일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400km,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니 거의 500km라고 가정해보자. 사람의 걷는 속도는 시속 4km이다. 20일안에 500km를 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평균 20km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20km를 걷기 위해서는 하루 쉬는 시간이랑 밥먹는 시간 합쳐서 하루에 6~8시간 행군을 한 것인데, 하루에 6~8시간 걸으면서 전투까지 치르고 하는데 20일만에 서울을 왔다
당시 조선은 도로도 제대로 안닦여 있엇다는걸 가정하면 애미출타 속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호랑이 손끝까지 진출한 왜군.. 조선팔도 강간당했노 엑윽;;)
그렇게 파죽지세로 당시 임진왜란때 북쪽으로 크게 진출한 장수는 두명이 있었어
첫번째 장수는 일게이도 잘아는
고니시 유키나가 ( ? ~ 1600 )
두번째 장수 역시도 일게이들이 잘 알고있는
가토 기요마사 (1562~1611.8.2)
우선 이새끼들이 어떤새끼인지 조금 짤막하게 말하고 본론으로 돌아갈께.
(위 짤은 고니시 석상.. DJ컨베이션 슨상님 동상같이 우뚝하게 서있노..)
고니시는 전국시대 당시 존나 듣보잡 새끼로 애비따라 껌팔듯이 히데요시의 수송셔틀로 활동했엇어
그러다가 히데요시의 신뢰를 얻고 우토성 영주가 되었지
애비 버프 벼락출세 부럽노..
( 위짤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 ..극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기도 해
이후 일본군의 선봉장이 되어 대동강까지 진격하였고 6월 15일에 평양성을 함락하였지
하지만 고니시의 진군은 평양에서 발목이 잡혀 더이상 진군하지 못했어
고니시 좆조루노..
( 위짤은 가토 기요마사 동상 )
다음은 가토 기요마사
이새끼는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의 시동을 지내며 많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었어
고니시같은 껌팔이 듣보잡 새끼랑은 확실히 클라스가 다른 뛰어난 전쟁경험의 소유자였지
더군다나 이새낀 좀 실력이 있엇는지 전국시대때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이라는 별칭을 얻었어
시즈가타케 전투는 히데요시가 통일사업을 할 수 있게 기반을 닦은 매우 중요한 전투였음;;
여기서 졌으면 히데요시 증발 ^오^
그렇게 일본군이 함경도 일대의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만강을 넘어 여진족을 치는것이 가능했었어 ( 이제부터 본론들어간다 )
가토 기요마사는 고니시의 조루같은 진격으로
함경도를 통한 명으로의 진격루트를 알아보기 위한 위력정찰을 감행해
그리고
(짤은 왜구사진)
두만강일대에서 살던 여진추장 노토가 이끌던 노토부락소속의 부락을 공격하여 여자는 겁탈하고 있는건 모두 불태우고
돈이 되는거나 먹을 것은 모두 약탈해버려
평화롭게 살던 여진족 개빡쳣을듯 (안보 불감증 ㅍㅌㅊ?)
( 씨발 남에 나라에서 이게 뭔짓 은 좆까고 이이제이 개이득 ^오^ )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한 여진추장 노토는 여진군을 이끌고 북상하는 왜군을 요격하여
왜군을 격퇴하고 후퇴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함경도일대로 진입하게됨
간단히 말해 노토부락의 성을 공격하던중 여진군이 사방에서 공격해와 공성을 포기하고 패퇴했다는 이야기임
ㅋㅋㅋㅋㅋ 이새끼들은 부락터는거 모자라서 성하나 잡수실려고 햇었던 모양
어쨋든 우리는 이이제이니깐 개이득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일본측 기요마사의 기록은 어떨까?
(위짤과는 관련이 없음)
키요마사는 회령의 조선인을 길잡이삼아 여진족의 거주지 오란카이에 진입
※ 오란카이 (여진을 오랑캐라고 부르니 일본식 발음으로 오란카이가 됨 지들이 오랑캔데 여진족보고 오랑캐라고함 자기비하 ㅍㅌㅊ?)
국자로 (중국 지린성 연길) 일대에 13개 여진의 부락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이에 여진도 사방에서 키요마사부대를 요격해, 키요마사의 측에도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키요마사는 히데요시에게 보고하기를
①오란카이에서 명으로 통하는 루트를 찾았지만, 오란카이는 조선의 2배 정도 넓고,
여기로부터 명에 진출에 하려면 타타르족(몽골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무리이다 ,
②오란카이는 밭뿐으로 잡곡 밖에 생산되지 않고, 군량미가 손에 들어 올 전망은 없다,
③오란카이에는 일본의 다이묘와 같은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통솔자는 없다고 보고하였다
(『加藤?正朝鮮侵略の?像』北島万次?吉川弘文館??史ライブラリ?230)
오란카이의 성을 무너뜨리고 야영 했다.
그 날밤.오란카이인 3천이 북을 치고 반궁을 발사하며 야습해오자 조총으로 격퇴하고
이른 아침까지 추격해서 추격해서 오란카이가 수도로 여기는 산상에까지 도착했다
( 분명 썰려나갔던것처럼 기록되어있는데 누구말 믿어야 하노 ㄷㄷ..)
일본이나 조선 모두 이런 기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일단 주력부대간의 정면격돌도 아니었고 (여진은 노토부락의 병사들 일본군은 1500가량으로 추정)
또한 조선입장에서는 그다지 기록할 이유가 없고 일본입장에서도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겠지
일본측 기록을 보면 마치 승전한듯 보이는데 누구말이 맞노...
왜군이 물러간후 왜군과 싸웠던 노토부락의 행보를 보면 왜군에게 패햇다고 할수 없어
패하고 13개부락이 털렸다면...조선까지 추격해올 엄두도 못냈을테고....
아무래도 초반에 여진부락을 한두개를 기습해서 전과를 올렸으나 곧 여진족의 반격에 노짱따라가서 후퇴했는듯 싶다.
3줄 요약
연해주나 간도지방은 야인부락 이라고 해서 고려때부터 여진족의 터전
가토라는 일본의 장수가 여진족부락을 약탈
여진족이 개빡쳐서 함경대 까지 가토를 추적
아무튼 임진왜란 속에 감춰진 역사들이 많다보니깐 일반인도 모르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즐거운 마지막 주말 되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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