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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이름이 외자인 이유를 알아보자.ARABOZA





들어가기에 앞서서 밑에 써 놓은 이름들을 한번 훑어보기로 하자.(참고로 이 글은 내가 독창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인터넷 신문 기사를 다듬어서 쓴 글이다. 출처는 맨 아래에 있으니 관심 있는 게이들은 봐도 좋을 것 같다.)

1. 태조 이단 초명:이성계

2. 정종 이경 초명:이방과

3. 태종 이방원

4. 세종 이도

5. 문종 이향

6. 단종 이홍위

7. 세조 이유

8. 예종 이황

9. 성종 이혈

10. 연산군 이융

11. 중종 이현

12. 인종 이호

13. 명종 이환

14. 선조 이공

15. 광해군 이혼

16. 인조 이종

17. 효종 이호

18. 숙종 이순

19. 경종 이윤

20. 영조 이금

21. 정조 이산

22. 순조 이공

23. 헌종 이환

24. 철종 이변

25. 고종 이철

26. 순종 이척

위에 역대 조선 왕들의 실명을 쭉 나열해봤어.

잘 보면 조선 왕조(대한제국 포함) 임금 중 단 4명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외자로 되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거야.

과연 왜 이렇게 외자 이름이 많은 걸까? 보통 우리 사이에서는 외자 이름이 별로 흔치는 않은데 말이야. 지금부터 그 이유를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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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휘(忌諱)’ 혹은 피휘(避諱)’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기휘 혹은 피휘(이하 기휘)라 불리는 문화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

유교 경전인 <춘추>에 주석을 단 <춘추공양전>이란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오는데.

“<춘추>는 존귀한 사람과 친한 사람, 어진 사람의 이름을 숨겼다.(春秋爲尊者諱 爲親者諱 爲賢者諱)”

풀이해 보면,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는 거야. 유교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이게 일종의 예의범절로 굳어지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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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명확하게 이해가 안된다면 삼국지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삼국지의 인물인 제갈량, 관우, 조운을 부를 때 이름대신 공명, 운장, 자룡 등의 호나 자를 부르잖아? 이것도 일종의 기휘라 할 수 있어(이제 이해가 쉽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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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부터 제갈량, 관우, 조운 흔히 제갈공명, 관운장, 조자룡 등으로 부른다.)

앞서 말했지만 타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게 유교 문화권에서의 예의라고 했잖아?

같은 계층의 사람끼리도 그러했을텐데 감히 왕이나 황제 또는 성현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었을까?

아니, 사실 부르는 것은 당연히 안되는 거고 심지어는 이름의 한자어 혹은 그 소리()만 같아도 감히 쓰지를 못했어.

예를 한번 들어볼까?

첫번째는 우리나라 광역시의 하나인 대구(大邱)에 관한거야. 근데 사실 대구의 원래 지명은 대구(大丘)였어.

근데 이 구()자가 공자(孔子)의 실명이었거든 그래서 성현의 이름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면서 슬그머니 구()자로 지명을 바꿔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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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대구 광역시, 오른쪽은 공자)

두번째로는 연개소문에 대한 내용이야. 고구려의 대막리지를 지냈던 연개소문(淵蓋蘇文) <삼국사기>에서는 천개소문(泉蓋蘇文)고 기록을 했어. 그 이유가 참 우스운데, 당나라 황제인 이연(李淵)의 연() 자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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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드라마에 나온 연개소문)

어디 그뿐이랴? 청나라 건륭제 시대 때, 팽가병(彭家屛)이라는 사람이 가문의 족보를 간행하다가 실수로 건륭제의 이름을 기휘하지 않았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 그의 가문이 멸족 당하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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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실을 빌미로 숙청당한 장성택, 노무노무 무섭盧)

위와 같은 일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에 조선의 임금들은 자식들의 이름을 외자로 지었어. 백성들의 불편함을 최대한으로 줄여주기 위함이었지.

사실 그럴만도 해. 조선의 물론이거니와 역대 중국 황제들의 이름 그리고 성현들의 이름까지 피해가야 했으니 조상들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겠냐고.

그런 시대에 왕이 이름이 세 글자라면? 피해가야 하는 글자가 두 글자로 늘어나는거지(그 때문에 이름도 못 짓고 지명도 바꿔야 하며 책도 못 쓰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어)

조선의 영조는 그런 점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40년간 숨겨왔다고 해. 근데 언젠가 실수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게 됐어.그러자 사관들이 그 이름을 피해서 기록을 하지. 근데 어찌 그게 쉽겠어? 당시에 얼마나 많은 글자를 기휘해야 했겠어?족히 몇 백자는 되었을거라고 봐.

어느날은 사관이 기록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어서 영조가 그 이유를 물으니 사관은 기휘 때문에 못 적고 있다고 답했지.그러자 영조는 자신의 이름은 기휘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다 적어도 된다고 허락을 해버려. 더불어 기휘의 범위를 줄일 것도 명하지.

성리학적 명분을 중시해야 했던 왕도 기휘라는 비생산적인 문화는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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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

세줄요약

유교 문화권에는 기휘 혹은 피휘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왕, 황제, 성현들의 이름을 함부로 못썼다.

고로 왕들은 그런 백성의 불편함을 덜기위해 일부로 외자 이름을 쓰려했다.

<<출처>>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임금의 이름이 외자인 까닭은?>

http://leekihwan.khan.kr/255

납수구검, 애지유여, <조선왕들의 실명공개>